“벨 연구소 트랜지스터 팀”의 협업과 파국: 위대한 혁신 뒤에 숨은 이야기
1947년, 벨 연구소(Bell Labs)에서는 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과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 그리고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세계 최초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성취는 이후 전자산업과 컴퓨터 시대를 여는 거대한 혁신으로 자리 잡았죠.
마지막에 이 팀에는 심각한 균열이 있었습니다. 브래튼과 바딘은 협업을 통해 ‘point-contact’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는데,
(1) 막판에 쇼클리가 뒤늦게 독자적인 아이디어(‘layer’ 혹은 ‘Sandwich Structure’)로 보완하며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고 나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쇼클리는 자신의 공을 과도하게 내세우고, 함께한 동료들과의 소통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탁월한 팀워크로 빛났던 연구 그룹은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딘과 브래튼은 쇼클리와의 신뢰가 무너졌고, 세 사람이 나란히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음에도 더 이상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2) 쇼클리는 이후 실리콘밸리에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를 세웠지만, 그곳에서도 또 한 번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인재들을 내보내고 맙니다. 쇼클리 반도체 출신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똑똑하긴 한데… 업적 가로채기, 권위주의, 편집증, …” 전형적인 일_같이하기_싫은.human이었던 것이죠.
이들이 쇼클리를 떠나고 세운 회사가 바로 페어차일드(Fairchild), 인텔(Intel) 입니다.
뛰어난 역량만으로는 지속적인 혁신이 어렵다.협업과 공정한 공로 인정, 그리고 원활한 소통이 없다면, 어떤 혁신도 팀을 지키지 못한다.
출처 : No Site
Grace Hopper: COBOL, 컴파일러 언어의 시작
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 중 하나인 COBOL을 탄생시킨 주역, 그래이스 호퍼(Grace Hopper)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컴퓨터 언어는 Fortran1 수준의 언어들만 있었는데, 거의 프로그래밍 언어로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너무 Low level이라서. COBOL 언어는 영어 문장만 읽어도 해당 코드 동작을 이해 할 수 있을만큼 비교적 쉬워졌구요.
호퍼는 바사(Vassar)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예일(Yal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예비군으로 복무했습니다.
하버드(Howard Aiken) 프로젝트 합류: 매우 이른 시기에 메인프레임 컴퓨터(하버드 마크 I) 개발 팀에 참여
전쟁 후, ENIAC으로 유명한 에커트(Eckert)와 모클리(Mauchly)의 스타트업 격인 EMCC(Eckert-Mauchly Computer Company)에 합류
수학자로서 탄탄한 배경을 가졌지만, 호퍼는 ‘실용적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을 꿈꿨습니다.
당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주로 어셈블리 언어(Assembly Code)나 수학적 코드로 이뤄졌기에, 박사급 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호퍼의 고민: “앞으로 프로그래머가 늘어날 텐데, 모두 박사일 수는 없다. 영어에 가까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호퍼는 ‘컴파일러(Compiler)’ 개념을 도입해, 사람 친화적인 언어를 기계어로 번역해주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FLOW-MATIC이라는 초기 컴파일러가 바로 그 결과물이며, 이것이 훗날 COBOL의 기반이 됩니다.
EMCC(나중에는 Remington Rand→UNIVAC→Unisys로 흡수)에서 호퍼가 이끈 프로그래밍 팀은 다양한 국적·인종·성별이 모인 “작은 유엔(Little UN)”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업계는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지만, 호퍼는 여성·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이끌고 개방적이며 협업 중심의 문화를 조성했습니다.
“하드웨어는 발로 찰 수 있는 것이고, 난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겠다”라는 그녀의 모토가 말해주듯, 프로그래밍 방법론에 팀의 역량을 집중시켰습니다.
호퍼가 해군 예비군 출신이었기에, 컴퓨터 개발 초창기 주요 고객이었던 미 국방부와 밀접히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국방부 위원회 주도: 국방부가 필요한 표준화된 프로그래밍 언어가 바로 COBOL이 되었고, 호퍼는 이 위원회를 주도하며 단일 표준 언어 채택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곧 “어떤 기종의 컴퓨터에서도 COBOL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소프트웨어 개발 생태계를 폭발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호퍼는 이후 정규 해군에 편입되어, 해군 제독에까지 올랐습니다.
해군 내에서 컴퓨터 활용을 적극적으로 추진, 대규모 군사 시스템까지 코드를 통합·표준화
은퇴 후에도 대학·기업에서 강연하며, 프로그래밍 교육과 혁신 문화 확산에 기여
최근 미 해군은 그녀의 업적을 기려, “USS Hopper”라는 구축함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이스 호퍼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영어에 가까워야 일반인도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다”라는, 당시로서 과학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전혀 생각도 않던 혁명적인 발상을 실현했습니다. 고집과 편견을 깨며 새로운 길을 연 그녀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프로그래밍 언어가 폭넓게 발전하고 IT 산업 전체가 성장할 수 있었죠.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
팀원들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목표를 명확히 잡아 함께 나아갈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이 탄생한다.
출처 : No Site
Xerox PARC: GUI의 시작과 Apple의 적용
Personal Computer(PC)와 Graphic User Interface (GUI)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많은 분들이 애플(Apple)이나 IBM을 떠올리지만, 사실 Xerox PARC에서 이뤄진 실험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라는 비(非)전공자. 즉, 비 컴퓨터 과학자 출신의 리더가 있었죠. 이번 글에서는 테일러와 그의 팀이 어떤 혁신을 이뤘으며, 그 성과가 어떻게 세상에 퍼져나갔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메인프레임 시대에는, 펀치 카드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일주일 뒤 결과를 겨우 확인하는 답답한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습니다.
로버트 테일러: DARPA 출신으로, ‘사람 중심 컴퓨팅’ 개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Xerox PARC: 복사기 회사였던 Xerox가 미래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Palo Alto에 마련한 연구소가 있었고, 테일러는 이곳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현실화할 강력한 팀을 꾸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테일러 자신은 뛰어난 프로그래머도, 하드웨어 엔지니어도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신 인재를 알아보고(“connoisseur of talent”), “조직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개자, 꿀벌’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습니다.
테일러는 팀을 네 가지 요소로 관리했습니다:
인재 채용: 뛰어난 사람을 우선 뽑으면, 그들이 알아서 혁신 과제를 만들어낸다는 신념
조직 구조: 계층을 최소화한 평등한 환경 구축 (명함에 직함이 없고, 서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형태)
커뮤니케이션: 주간 미팅에서 모두가 빈백 의자에 앉아 그주 진행 상황을 소개하고, 거칠게 피드백을 주고받음
도구(Tools): 필요하다면 직접 컴퓨터를 개발해서라도 최고의 개발 환경을 제공 (기존 Xerox 본사의 기성 제품을 과감히 거부)
이러한 “평평한 조직” 문화와 강력한 아이디어 교류가 Xerox PARC만의 창의적 DNA를 만들어냈습니다.
PARC 팀은 Alto라는 컴퓨터를 만들며,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윈도우, 아이콘, 마우스(WIMP) 인터페이스의 원형을 구현했습니다.
그래픽 환경: 텍스트만 출력하던 기존 메인프레임과 달리, 화면에 그림과 윈도우를 표시
마우스 사용: 키보드만 쓰던 시절에 ‘포인트 앤 클릭’ 개념을 도입
놀이와 실험: 첫 실행 화면이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 캐릭터였을 만큼, “컴퓨터는 재미있다!”라는 인식을 전파하려고 많은 시도.
하지만 Xerox 본사(뉴욕 로체스터)와 PARC(캘리포니아) 사이의 ‘다리(bridge)’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본사는 복사기 사업에 집중했고, 높은 비용이 드는 개인용 컴퓨터 개발을 주저했습니다.
그 결과 Alto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Apple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이 기술을 눈여겨보고, PARC를 방문해 GUI와 마우스, 윈도우 인터페이스 등을 맥킨토시(Macintosh)에 반영합니다. 이를 계기로 IBM의 개인용 컴퓨터(PC) 등장까지 맞물려, 개인용 컴퓨팅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죠.
테일러의 리더십 아래에서 엄청난 기술 혁신이 나왔지만, 막상 본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애플과 IBM을 통해 세상에 전파된 것이 꽤 놀랍습니다.
창의성은 ‘존재하는 아이디어들을 연결해 만드는 새로운 아이디어’이다
출처 : No Site
Xerox PARC에서 본 것들을 애플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재탄생시켜, 대규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테일러와 그의 팀이 만든 아이디어의 보고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나아가 전 세계 PC 생태계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테일러의 리더십을 요약하면, “사람을 알아보고, 팀이 마음껏 춤추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코드를 짜지 않았지만, 어떤 인재가 어떤 연구에 강한지 파악하고 연결
빈백 회의를 통해 자율적 문화와 거친 피드백을 동시에 장려
강력한 보호막이 되어, 본사의 간섭에서 팀을 지켜냄
Genentech: 스타트업의 시대.
허브 보이어(Herb Boyer):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광산 마을 출신. 고등학교 때부터 생물학에 관심, DNA에 매료됨. 예일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UCSF에서 유전자 공학 연구.
밥 스완슨 (Bob Swanson):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에서 성장. MIT에서 화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과학과 비즈니스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경력을 보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생명공학 회사 창립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회사가 바로 Genentech였습니다.
이 회사는 2021년 기준 12,000명의 직원을 갖고 있고, 모기업은 Roche입니다.
현대 많은 스타트업은 거의 제네텍에 대한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Genentech의 초기 목표는 합성 DNA를 이용해 인간 인슐린을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학문적·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창립 초기: 창고를 빌려 실험실로 꾸미고, 연구원들은 티셔츠와 운동화를 입고 14시간씩 작업하며 “Clone or Die”라는 슬로건 아래 일했습니다.
초기 자금: 스완슨이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캐피털 Kleiner Perkins에서 소규모 자금을 끌어오며 연구.
1978년 성공: 합성 인슐린 유전자를 개발하며, 경쟁자인 하버드의 월리 길버트를 제치고 ‘유전자 클로닝’ 성공
Bob swanson은 기술 개발에 대한 능력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기술이 시장에서 적용되고, 실제 생명을 구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대중에 알리고 투자를 받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언론 활용: 연구 성과를 언론에 알리고, 대중의 관심을 끌어 과학계를 흔들어 놓음.
출판의 자유: 다른 제약사와 달리 연구원들에게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도록 허용해, 학문적 성과와 산업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
스톡옵션 제공: 연구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줘, 직원들이 회사의 공동 소유자로 느낄 수 있게 만듦.
Genentech는 당시 일반적인 기업들과 달리 열린 문화와 강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평등한 분위기: 직책보다 실력과 열정을 중시. 연구실에서는 느슨한 드레스 코드와 친근한 분위기.
팀워크: 네오폴리탄 오페라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고, 연구에 몰입.
사명감: “생명을 살린다”는 목표가 직원들을 결속시킴.
몰입: 회사에서 의식주, 의료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을 해줬기에, 직원들은 업무에만 몰입 할 수 있었음.
Genentech의 이야기는 과학적 발견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때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도전 정신: 기술과 상업화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한 보이어와 스완슨의 통찰.
실행력: 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스완슨의 결단.
팀 문화: 모두가 사명감을 느끼며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오늘날의 바이오테크 산업은 Genentech가 남긴 유산 위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도전, 팀워크, 사명감이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Bennis & Biederman이 말하는 창의적 협업
이번에는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와 패트리샤 워드 비더먼(Patricia Ward Biederman)의 저서 『Organizing Genius』에서 제시하는 위대한 그룹(Great Group) 이론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앞서 다룬 여러 혁신 사례(에디슨 연구팀, 로스앨러모스, 제록스 PARC, 제넨테크, 휴먼 게놈 프로젝트 등)를 토대로, 이 책이 제안하는 ‘위대한 협업’의 핵심 규칙들을 정리해볼게요.
1.괜찮은 사람들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들(Great People)이 모여야 시작된다
“Good한 사람들을 많이 모은다고, Great한 Team을 만들 수는 없다”
출처 : No Site
리더 역시 뛰어난 인재를 찾아 과감히 영입하고,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인물을 팀에 두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팀원들은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비전을 제시하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에디슨 / 스티브 잡스: 다소 권위적이지만 빠른 결단으로 팀을 몰아감
오펜하이머 / 로버트 테일러: 네트워크 허브나 ‘꿀벌(아이디어 교차수분)’ 역할을 수행
리더가 협업 문화를 억압하는 ‘독재자’가 되면 쇼클리 트랜지스터 팀처럼 팀이 깨져버린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그룹은 “우리는 세상을 바꿀 사명을 띠고 있다”는 선교사적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적(敵)의 존재’가 열정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하죠.
맨해튼 프로젝트: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먼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긴박감
애플: “IBM(Big Blue)을 반드시 꺾겠다”는 경쟁 의식
이처럼 “우리가 이기지 않으면 끝이다!”라는 공감대가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냅니다.
혁신 그룹은 종종 외부로부터 고립된 장소나 문화(‘섬’)를 구축하지만, 결국 결정권자(자본, 정부, 시장 등)와 연결(‘다리’)이 잘 되어 있어야 실제 성과가 나옵니다.
제록스 PARC는 섬의 문화에선 성공했지만, 본사와의 ‘다리’가 망가져 결국 스티브 잡스가 그 아이디어를 애플로 가져갔습니다.
이들은 자유로운 복장, 사내 농담과 파티 같은 문화로 구성원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스트레스를 조직 외부로부터 지켜주고, 팀 내부는 유쾌한 협업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몰입을 온전히 하려면, 직원들이 “의식주”와 “의료”에 대한 고민이 없어야하고, 공동 Founder라는 생각이 들도록 지분을 나눠줘야 합니다.
애플에서 흔히 말하는 “Ship It(완성해 세상에 내놓으라)”이라는 구호처럼, 위대한 그룹들은 제품·기술을 ‘출시’하는 데 집중합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기한 없이 연구만 계속하면 ‘개발 지옥’에 빠질 수 있으므로, 실행 마감을 설정해, 실제 성과물을 기간 내에 내놓게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완성이 되지 않더라도요.
기초연구와 현장 적용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드러납니다.
로스앨러모스: 물리학의 기초이론 → 원자폭탄 실용화
휴먼 게놈 프로젝트: 유전자 서열 해독 → 의약·생명공학 산업에 즉시 적용
이처럼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뒤섞여, 실험실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신속히 프로토타입으로 만드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베니스 & 비더먼, 그리고 다른 혁신 사례에서 추려낸 ‘위대한 그룹’의 공통 원칙을 간단히 정리하면:
탁월한 인재를 모으되, 자율성과 협업 능력을 함께 본다.
강력하지만 팀원들에겐 자유를 주는 리더가 필요하다.
사명감을 심어주고, “우리는 승리해야만 한다”는 열정을 공유한다.
섬과 다리를 함께 고려해, 몰입할 공간 & 자원 연결을 함께 갖춘다.
낮은 공식적 위계와 유연한 문화로 심리적 안정감과 몰입을 만든다.
구체적 마감 기한(Shipping)을 둬 현실적 성과를 낸다.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을 동시에 추구한다.
무한한 정보 교류와 지식 공유를 장려한다.
적절한 ‘적’(경쟁자) 설정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구성원이 가치와 성과를 직접 공유(지분, 인정 등)하며 책임감과 열정을 키운다.
Bennis & Biederman의 위대한 그룹 이론은 과거 혁신 사례들의 성공 요인을 관통하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뛰어난 천재’가 모든 걸 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몰입과 자유를 균형 있게 설계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조직이나 프로젝트 팀에서도, 이런 규칙들을 적절히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꼭 ‘적’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팀원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할 사명감”을 만드는 것은 혁신의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조직화가 바꾸는 혁신의 판도: 인재·R&D 그 다음은?
성장 경제학(Growth Economics) 관점에서 혁신의 핵심 요소로 흔히 “R&D 투자”와 “과학·기술 인재”가 꼽힙니다. 솔로우(Solow)의 연구에서 R&D가, 로머(Romer)의 연구에서 인적 자본(인재)이 강조되죠.
이뿐만 아니라, 여기서 “세 번째 직접 혁신 요소”, 곧 과학·기술을 조직하는 방식(Organization)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예산과 인재만 갖췄다고 혁신이 자동으로 일어나진 않는다는 거죠.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의 연구에도 일부 언급된 바 있듯, 과학·기술 조직화는 어떻게 R&D와 인재를 연결하고, 시스템으로 엮어내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조직적 성공 사례: MIT 레이더 연구소(Rad Lab), 로스앨러모스, 제록스PARC, 제넨테크 등
공통점: 이들은 모두 낮은 계층 구조, 밀도 높은 협력, 챌린지 모델(명확한 목표 제시), 그리고 혁신적 문화를 지향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혁신이 기관 차원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관 레벨: 재정 지원, R&D 인프라, 유연한 조직 문화
개인 레벨: 창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리더십,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를 밀어붙일 추진력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는 비합리적(언뜻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기꺼이 시도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데 성공했죠. 이러한 개인의 드라이브와 적절한 조직적 지원이 결합할 때, 혁신 속도가 극적으로 빨라집니다.
라드 랩(Rad Lab)이나 로스앨러모스(Manhattan Project)처럼, 명확한 도전 과제와 제한된 시간이 주어지면 팀은 집중력을 극대화합니다.
협업·소통: 모든 구성원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도록 낮은 위계와 빈번한 교류를 장려
실제 적용(Ship It!):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지 않고, 제품·프로토타입으로 현실화하는 것을 중시
이런 조직 문화는 “1+1이 2가 아닌 3 이상”이 되도록 촉진합니다.
디지털이큅먼트코퍼레이션(DEC)은 한때 미니컴퓨터 시대로의 혁신을 주도했지만, “코어 기술 변화에 맞춰 조직 문화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초기 창의 문화 vs. 새로운 시장·기술 변화
팀원들이 과거의 성공 모델에 안주하거나, 조직 구조가 변화에 적응 못하면 혁신 모멘텀을 잃게 됩니다.
결국 DEC 사례는 “한 번 성공한 혁신 조직이라도, 환경 변화에 맞춰 재정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경고를 주죠.
“R&D와 인재가 혁신의 전부가 아니다.과학·기술을 조직하는 방식,그리고 조직문화와 개인의 몰입이 결합될 때진정한 혁신이 탄생한다.”
출처 : No Site
혁신은 ‘기관의 지원’과 ‘개인의 의지’가 동시에 맞물려 작동해야 합니다. 한편 DEC의 실패 사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한 조직 재정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앞으로도 기술 패러다임이 바뀔 때, 어떻게 조직이 개개인의 창의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지 주목해보시죠. 여기서 답을 찾는 조직과 개인이 진정한 미래 혁신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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